어느 날 낮에 카스팔의 할머니는 부엌에서 소시지를 굽고 있었습니다.
프라이팬과 나란히 양배추가 담긴 큰 냄비가 걸려 있었습니다. 냄비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나고, 소시지는 지글지글 소리를 내고 있었어요. 온 집 안에서는 말할 수 없이 맛있는 냄새가 가득 풍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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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맛있다!"
소시지와 양배추를 모두 먹어치우자, 호첸플로츠는 말을 이었습니다.
"할머니, 아주 맛이 좋았어! 그런데 한 가지 꼭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오. 저 부엌 시계는 지금 12시 15분이야. 지금부터 10분 동안 여기에 얌전히 앉아 있는 거야. 한 마디도 말하지 말고 말이야. 10분이 지나거든 살려 달라고 고함을 질러도 좋아요. 하지만 단 1분이라도 앞서서는 안 돼. 내가 한 말을 알겠나?"
할머니는 대답이 없었어요.
대도둑 호첸플로츠는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이, 할멈. 듣고 있나? 어째서 아무 대답도 없지?"
할머니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의자에 걸터앉은 채 그대로 꼼짝도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는 호첸플로츠가 마지막 소시지를 입에 쑤셔 넣는 순간, 화가 머리끝 까지 오른 데다 놀라움까지 겹쳐 그만 정신을 잃었으니까요.
"아무리 그렇지만 댁의 개는 정말 이상하군요."
슈로타베크 부인은 미안한 듯이 숄을 살짝 당겼습니다.
"털어놓고 말씀드린다면..."
하고 부인은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젊었을 때 천리안 기술과 함께 마술도 조금 베웠어요. 솔직히 말합니다마는 하루의 일을 끝내고 나서 조금 마술을 부려 보는 것이 매우 큰 즐거움이었지요. 그래서 이런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어요..."
부인이 그런 말을 하면서, 바스티를 손가락질하자 바스티는 부인의 발밑에 번듯이 드러누워 몸을 뒤틀었습니다. 자기 말을 주고받는 것을 알러 있는 모양이었어요.
"어느 날 이 개를 마술로 센트 버너드(사람을 구하는 일을 돕는 스위스의 개)로 바꾸려고 했어요. 스스로도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아마 심심풀이로 그랬나 봅니다. 어느 재수 없는 날, 내가 무엇을 어떻게 틀렸는지 지금까지도 알 수가 없어요. 아무튼 이 가엾은 바스티는 그 날부터 악어 모습이 된 거예요. 사실은 전과 다름없는 훌륭한 셰퍼트인데요."
슈로타베크 부인은 눈에 눈물이 글썽해지면서 코를 팽 풀었습니다.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야?"
하고 대도둑 호첸플로츠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정말, 아무도 나를 생각해 주지 않는단 말이냐?
"아저씨 일을?"
하고 카스팔이 물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럴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나도 독버섯 수프를 먹었지 않아... 그것도 조금이 아니지. 너희들은 정말 내 배가 찢어지고 터져도 좋단 말이냐?"
"어쩌면 그게 훨씬 간단하고 좋을는지도 모르지만..."
하고 카스팔은 중얼거리듯이 말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저씨 때문에 걱정할 일이 없어지겠지. 할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할머니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습니다. 그리고 상냥하게 말했습니다.
"역시 도와 줘야지. 우린 모두 같은 사람이 아니냐?"
카스팔은 망설였습니다. 호첸플로츠는 이젠 배에서 우르륵!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모양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해 달라고 안달이었습니다.
"그럼, 좋아요."
하고 카스팔은 말을 이었습니다.
"할머니에게 감사해야 해요."
호첸플로츠는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두 손으로 배를 꾹 누르고 있어야 했습니다.
카스팔은 첫 밧줄을 호첸플로츠에게 감았습니다.
눈으로 냄새를 맡고 맛을 본 듯한 유명한 서문이죠. 호첸플로츠=구운 소시지 공식은 다시 읽어도 그대로 입니다. 파랑과 노랑과 주황, 정원에서 꺾어온 들꽃이 가득한 꽃병, 해가 쨍한 날의 새파란 하늘, 체크무늬와 꽃무늬의 테이블보와 커튼이 상상되는 카스팔 할머니의 부엌. 솔직히 카스팔과 제펠, 호첸플로츠가 어떤 모험을 하는지 보다 할머니의 냄비 안에 무슨 맛있는 게 들었을까가 더 궁금한 게, 저만 그런 건가요? 개인적으로는 마무리가 약간 아쉬운 듯한 이야기지만 아마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끝까지 안고 가고픈 작가의 마음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첫 이야기와 같이 승자의 퍼레이드가 있다는 점도 시리즈를 연결하는 고리로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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