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런은 살면시 빠져나가서 얼른 갱의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벤치에 있는 자기 옷을 움켜쥐고 청소 도구실의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엘런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서 버리고 말았다. 놀랍게도 엘런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오스틴의 모습이었다. 오스틴이 먼저 이 청소 도구실에 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욱 놀랍게도 오스틴 역시 털 내의를 입고 있었다.
"빨리 문 닫아!"
오스틴이 꾸짖듯이 소리쳤다.
엘런은 멍청하게 서 있었다. 오스틴의 솟옷은 자기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들리지 않니? 문 닫으라니까!"
"너... 너도 털 내의를 입고 있는 거야?'
엘런은 자기 눈이 믿어지지 않는 듯이 물었다.
"문 닫으라니까!"
오스틴은 세 번째 말하고 머리를 쑥 들이밀어 속치마를 입었다. 그리고 속치마에서 머리를 내민채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그래. 난 털 내의를 입었어."
이 때 비로소 엘렌은 정신을 차리고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리 학교에서 털내의를 입은 아이는 나뿐인 줄 알았지 뭐야."
이렇게 말하면서 엘런은 마룻바닥을 청소할 때 쓰는, 톱밥이 들어 있는 자루에 걸터앉았다.
"나도 나 혼자뿐인 줄 알았어, 거울 속의 너를 볼 때까지는 말이야. 네 허리가 불룩하기에 혹시 하고 생각했었어."
"나도 빨간 게 좋아. 아, 여기 빨간 색이 든 게 있다. 봐, 오스틴, 이건 조그만 빨간 원숭이가 들어 있어."
"그리고 야자수도. 난 야자수가 좋더라."
오스틴이 들뜬 소리로 말했다.
둘은 그 옷감을 펼쳐 놓고 들여다보았다. 흰 바탕에 빨간 야자수가 드문드문 서 있고, 야자수마다 조그만 빨간 원숭이가 꼬리로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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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내 옷 이제 다 돼 가. 내일 아침에는 입고 갈 수 있어. 엄마가 낮부터 줄곧 그 일을 하고 있거든. 저녁도 오빠하고 나하고 둘이서 차렸지 뭐니. 엄마가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말이야. 내일, 흰 양말 신고 오는 것 잊지 말아."
다음 날 아침, 엘렌은 정성들여 옷을 갈아 입었다. 어머니가 머리를 빗겨 주고, 허리에 붙은 장식 허리띠를 나비 리본으로 뒤로 곱게 매 주었다.
엘런은 지금까지 입은 옷보다도 이 옷이 마음에 들었다. 새 4학년 교실에 오스틴과 나란히 걸어 들어가는 것이 몹시 기다려졌다.
엘런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걸어갔다. 나비 리본이 풀어질까봐 달리지도 않았다.
오스틴네 현관에 서서 탄타탓탓하고 신호의 스텝을 밟았다. 그러나 오스틴은 나오지 않는다. 한참 기다리다가 다시 탄타탓 탓탕탕 하고 스텝을 밟았다.
그제야 오스틴이 나왔다. 손에 먹다만 토스트를 들고 있었다.
"알았어. 자, 가자."
오스틴은 좀 화난 투로 말했다.
엘런은 오스틴을 아래위로 흝어보았다. 그 옷은 엘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천만 같았지 모든 것이 다 달랐다.
스커트 자락은 아래로 축 처졌고, 소매도 엘런처럼 헐렁하지 않다. 깃도 턱밑에서 여며지지 않고, 단추도 형식으로 붙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뒤로 큼직하게 나비 리본으로 매게 되어 있는 허리띠가 없지 않은가?
엘런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얘, 오스틴! 네 허리에는 리본이 없잖아?"
오스틴은 토스트를 다 먹고 손가락을 핥았다.
"내 옷에는 없어. 난 너보다 몸이 크잖니? 그래서 품을 더 가져야 했던 거야. 그리고 우리 엄마가 소매를 잘못 잘라서 허리띠감이 없어졌어. 나는 뚱뚱해서 어차피 넓은 나비리본은 어울리지 않는대."
"그래? 그거 안 됐다."
앨런은 뭐라고 말해야 좋은지 알 수가 없었다. 맥이 빠지고 할 말이 없었다.
오스틴은 스커트 자락에서 나온 실밥을 떼내면서 말했다.
"너도 그 나비리본 떼버려. 우리를 쌍둥이로 보이게 할 계획이잖아? 네가 먼저 꺼낸 얘기야."
"뗄 수가 없어. 이건 옷에다 꿰매 놨는걸."
엘런은 말했다. 그리고 속으로 떼낼 수 없어서 잘 됐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예쁜 허리띠인데.
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과 입학 시기마다 옮겨 다녔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런 친구 관계에 매우 예민했다가 나중에는 포기한 쪽에 가깝다. 대학도 멀리 갔고 그나마도 자취였는데다 졸업식도 못 보고 해외 취업으로 바로 밖에 나와서 계속 새로운 사람들에게 적응하고 끼어들어야 하는 입장이라 무감각해졌달까? 고등학교 때는 무려 같은 반에 좀 논다 하는(요즘같이 무서운 애들까진 아니고) 애들이 날 싫어해서 뒤에서 나름 눈빛 공격도 하고 그랬던 모양인데 그 당시 나는 내가 관심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가 너무 분명해서 그 애들이 내 뒤에서 험담하고 틱틱댔던 것도 못 느끼고는 졸업하고 나서야 걔가 그랬던가 하며 갸웃거리게 됐다.
하지만 교실 내 아이들, 특히 여자아이들의 그 미묘한 감정들과 소속감, 대화의 흐름, 주도하는 사람, 비밀과 가십들 .. 어렸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중학교 2학년 2학기에(초등학교 졸업 이후 완전히 모르는 도시로 이사가 새로 입학해 적응한 남녀 공학 남녀 합반 중학교에서 또 전학을 가서) 전학 간 학교는 남녀 공학이었지만 남녀 각반이었는는데 처음 겪는 여자 반, 반 아이들은 SES와 핑클에 집착하고(당시 우리 집은 TV를 보지 않는 집이라서 인기가요니 댄스가수니 하는 것은 그때 처음 알았다), 가출했다 잡혀온 유급 언니까지 있는 그 카오스는 겨우 6개월이었지만 지금도 잊지 못할 '충격과 경악'의 기억 넘버 1이다. 그때 얼마나 놀랬는지 그 중학교를 졸업해 완전히 동떨어진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얼마나 기죽은 애로 지냈었는지 쯧쯧. 그때 인생 최저 자존감을 찍었던 것 같다.
그나마 이후에 고등학교랑 대학교에서 자존감 쭉쭉 올리고 지금은 그런 부분에선 정말 스트레스 없이 지내지만 나중에 내 아이가 이런 문제로 고민한다면 언제든지 이 이야기 보따릴 풀어놓을 준비가 되어있다. 나도 참말로 그랬었다고. 참으로 별일이고 지나고 나도 그건 별일이라고. 별일 아니라는 사람들 있으면 자꾸 얼쩡대며 얄밉게 구는 오티스마냥 엉덩이를 차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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