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리어가 근심스런 얼굴로 말했다.
"내게는 베린더만큼 마술의 힘이 없어요. 그렇지만 베린더에게는 무엇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어요. 마음이 있다는 것이 나의 강한 점이지요. 베린더는 마음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그걸 모른답니다."
글로리어는 마치 자기 자신에게 타이르는 것처럼 조용히 이야기를 계속했다.
"베린더는 언제나 자신이 너무 많아서 이번에도 이미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어떻게 나가느냐를 알면 자못 놀랄 거예요. 내 마음을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가르쳐 주었어요. 그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는 내 마음을 따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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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음, 의자에 뛰어오르더니 금테 두른 유리장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글로리어는 골무만한 크기의 비취로 된 돼지를 뛰어넘어 애너벨이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백조 장난감 옆에 앉았다.
그 곳에서는 달빛이 비친 실내와 창 밖의 테라스와 그 저편의 냇물이 환히 내다보였다.
글로리어는 잘 자리잡고 앉았다. 그리고 금목걸이를 돌려 '글로리어'라는 글자가 목 바로 뒤에 오도록 했다. 다음에 몸을 핥아 털을 가지런히 다듬고 꼬리도 모양 좋게 잘 놓았다. 그런 다음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그대로 숨을 멈추었다.
시계가 12시를 땡땡 쳤다.
달은 천천히 하늘을 가로질러 갔다. 그에 따라 바닥에 비치는 그림자도 움직였다. 달은 큼직한 스포트라이트처럼 유리장을 차례로 하나씩 들여다보면서 천천히 움직였다. 조금 뒤 글로리어가 앉아 있는 유리장을 비추었다.
글로리어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앉은 채였다. 눈물이 흐른 눈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났고, 달빛 속에서 흰 털은 금빛으로 바뀌었다.
달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글로리어는 눈썹 하나도 꼼짝하지 않았다. 이미 숨도 쉬고 있지 않았다. 옆자리에 나란히 앉은 백조와 마찬가지로 등에 태엽 감는 나사를 달고 반짝반짝 빛나면서 싸늘하게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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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대답하는 것보다도 빨리 몸집이 작은 부인은 애너벨을 보자, 아름다운 파랑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애너벨에게로 가까이 왔다.
여자가 자기에게 닿는 순간 애너벨은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아아! 내 볼에 닿는 이 비단결처럼 매끄러운 볼, 이 다정하게 끌어안는 모습, 머리카락을 살짝 쓰다듬어 주는 이 손, 이것은 어머니만의 것이다!)
영원한 이별과 나의 존재가 가장 큰 이야기의 줄기인 이 책은 왠지 씁쓰름해요. 그리고 한국 드라마 스타일의 반전도 있어요. 일단 캐릭터들이 각자 사연이 있습니다. 10센티미터 개를 보호자 삼아 집도 절도 없이 기억도 잊어버리고 떠도는 3살짜리 고아 소녀, 개는 환영하지만 어린아이는 거절하는 냉정한 부인은 사실 사랑하는 아들이 집을 나가버린 비련의 어머니, 그리고 10센티미터 몸으로 인간들에게 재주를 부려 아이를 건사해 나가는 유모 개. 이렇게 말하니 참으로 막장이네요. 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맘에 안 드는 건 생뚱맞게 이름을 바꾸고는 어디서 어쩌다 만났는지 요정이랑 결혼해서는 집 나가서 걱정시킨 걸 미안해 하기는커녕 뻔뻔하게 애 먼저 보내놓고 당당히 돌아온 아들입니다. 이쯤 되면 아시겠죠? 어린 소녀는 사실은 부인의 손녀였던 거죠. 출생의 비밀, 우리는 익숙하지요? 그걸 아무렇지 않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부인의 대범함에도 놀랐습니다. 나름 신선한 요정 엄마는 충격적이게도 분량이 없고요. 온갖 고생과 수모를 겪어가며 아이를 키워온 글로리아는 결국 중간 낙오로 해피 엔딩에는 참여하지 못하네요. 흐음. 네,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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