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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헨 전집

[메르헨 전집_학원 출판사]42. 요술쟁이 아기판다

by 사서를꿈꾸는직장인 2024. 7. 26.

노호는 목에 매단 가죽 주머니를 흔들어 조그만 카드를 몇 장 꺼냈다. 어느 카드에도 세로 가로 각각 세 개씩, 모두 아홉 개의 작은 네모꼴이 그려져 있었다. 한가운데 네모꼴에는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았고, 나머지 네모꼴에는 모두 숫자가 씌여 있었다.

노호는 몹시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것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어요. 우리 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할아버지는 또 그 아버지로부터...... 이렇게 차례로 물려받았어요. 맨 처음에는 우리 조상이 중국의 훌륭한 임금님에게서 받은 거예요."

"그 카드는 대체 뭐지? 어떻게 쓰는 거니?"

샐리가 신기한 듯이 물어보았다.

"이건 '요술의 네모꼴'이라고 합니다. 소원을 풀고 싶을 때 짧은 주문으로 시를 짓고, 그 시를읊으면서 이 카드의 한가운데 네모꼴에 숫자를 써 넣는 겁니다. 그러면 소원이 이뤄지는 것인데......"

요술쟁이 아기판다_케이트 체트필드
요술쟁이 아기판다_케이트 체트필드

'오오, 마법이여. 너의 힘을 증명해 다오.

마틴 씨 집에

으리으리한 지붕을 되돌려 다오,'

요술쟁이 아기판다_케이트 체트필드

제가 이 전집을 찾기 시작한 이유는 바로 이 책 때문이에요. 어느 날 갑자기, 아주 갑자기 이 책이 너무 읽고 싶었는데 한국어판도 영어판도 구할 수가 없더라고요. 이 전집 외에는 읽을 방법이 없어서 전집을 구하고, 그걸 하나하나 읽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네요. 다시 읽어보니 약간 허무하기도 하고 기억엔 없었는데 이 판다 엄청 말썽 쟁이었구나 싶기도 해요. 이 정도면 쫓아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 다시 읽고 나니 이 책이 기억에 많이 남았던 이유는 아마도 서양 사람에게서 재해석된 동양에 대한 이미지, 그들의 오리엔탈리즘이 진하게 묻어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동양의 신비로운 동물 하면 떠오르는 중국의 판다, 노호라는 묘한 이름, 일본에서 대중화된 스도쿠, 마술의 조건이었던 시도 일본의 하이쿠를 떠올리게 해요. 송로버섯, 서양의 고급 트러플을 좋아하는 배경은 미지의 동물에 품격을 주기 위해서일까요 아니면 이 판다는 그냥 동물이 아니라 사람과 동일한 인격체라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일까요. 어쩌면 서양의 독자들에게 동양의 동물에 대한 친근감을 주기 위해서 만들어 준 것일지도요. 감초도 빠질 순 없지만요. 이 모든 서양인이 생각하는 동양적인 것의 혼합이 동양인이 보기에는 참 어설프고 어처구니없지만 이 이야기가 써진 그 시대의 서양은 이렇게 수많은 나라와 역사와 문화가 있던 아시아를 이렇게 대충 봤던 거겠죠. 이래서 역사란 참 재미있어요. 마직막 일러스트가 기억나실까요? 노호의 주문은 '으리으리한 지붕'이었는데 서양식 성의 지붕이 나타났죠. 노호는 이런 성을 본 적도 없을 테고 중국식 성이 훨씬 익숙할 텐데 왜 이렇게 나타났을까요? 노호가 아닌 주변 사람들의 의지도 노호의 요술에 영향을 끼친 걸까요?